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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 : 우리 스스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변화가 되자


카니발


카니발에서는 삶 자체가 놀이를 하는 것이고, 이 놀이는 잠시 삶 자체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카니발의 특징적인 본질과 그 존재의 독특한 양식이 있는 것이다.

카니발은 웃음의 원리 속에서 구성된 민중들의 제2의 삶이며, 민중들의 축제적 삶이다. 축제성은 웃음을 자아내는 중세의 모든 <의식적-구경거리> 형식들의 본질적인 특징인 것이다.

....카니발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미하일 바흐찐,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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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카니발
 

원형비평(archetypal criticism)


- 신화비평(myth criticism)
- 근본적으로 역사적 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신화적 패턴 또는 원형(archetype)을 문학작품이 구체화한다는 주장
- 모드 보드킨(Maud Bodkin)의 《시의 원형적 패턴 Archetypal Patterns in Poetry》(1934)
- 제임스 G.프레이저(James G. Frazer:1854~1941)의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1890~1915)와 인류학적 저작과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1875~1961)의 심층심리학에서 비롯.
- 문학비평에서 ‘원형’은 신화와 꿈, 심지어는 사회적 행동인 제의양식에서뿐만 아니라 더욱 광범위한 문학작품 속에서도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서술구조, 인물유형, 또는 심상(이미지)에 적용된다. 이처럼 다양한 현상들에 내재해 있는 유사성들은 일련의 보편적이고 원시적이며 근원적인 구조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문학작품 속에서 효과적으로 형상화되면 독자들에게 심원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 조지 R 윌슨 나이트, 로버트 그레이브스, 필립 휠라이트, 리처드 체이스, 조지프 캠벨, 노스럽 파리이
- 노스럽 프라이(Northrop Rfye) 《비평의 해부 The Anatomy of Criticism》(1957)
- 원형비평은 역사주의와 형식주의 비평가로부터 문학작품에 특유한 형식상의 전제를 한다는 점과 문학작품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환원주의 라고 공격을 받기도


http://100.naver.com/100.nhn?docid=7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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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08/10/25 09:15 Trackback. : Comment.
 

가을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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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로 향해가는 계절..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나뭇잎 세개.
초록, 빨강. 바스락갈색 나뭇잎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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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가을
사진 : 2008/10/22 07:45 Trackback. : Comment.
 

화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


지배층의 요구에 따른 사이비 「화해」
→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진실의 은폐–진실의 화해를 방해


- 서경식, <화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 강연문에서.
  http://www.peacemuseum.or.kr/bbs/zboard ··· no%3D419


국가 폭력의 진상규명과 관련된 강연에서 나오는 말이었지만,
우리의 일상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거짓된 '화해'와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서경식의 통찰은 우리의 역사를 다시 보게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도 다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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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서경식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


출처 : 김춘진, <라틴아메리카 현대소설의 문제의식과 자기발견>, <<외국문학연구>>8호, 2001.
 

- 라틴아메리카의 이름을 찾고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려는 붐 소설의 노력은 마침내 마술적 리얼리즘을 잉태했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초현실주의적이거나, 표현주의적 경향의 일부로 파악되기도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전통의 맥락을 떠나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했던 것, 라틴아메리카의 아이덴티티에 다가가기 위해 불가피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정체된 역사적 현실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본질을 드러내는 데 마술적 리얼리즘의 요체가 있다. 역사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적이며, 현실을 환상을 통해 묘사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지평을 넘어서는 것이다.

- 분명, 마술적 리얼리즘은 지역주의, 네오리얼리즘, 사회비판소설 등 라틴아메리카 전통의 문학적 토양에서 배양되었지만, 파리를 통해 전수된 유럽 모더니즘 소설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붐 첫 세대라 할 수 있는 아스뚜리아스나,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는 꼬르따사르, 가르시아 마르께스, 푸엔떼스, 바르가스 요사 등은 모두 파리 생활을 체험하고 불란서 문단의 조류와 접촉했었다는 데서 붐세대는 동시에 파리세대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모더니즘과의 관계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아이덴티티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은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적 자각의 체험이다. 물론, 그 근대적 자각의 한계도 분명해진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합리성에 근거한 계몽주의적 현실 인식과는 차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한계 자체의 인식도 아이덴티티 체험의 일부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라틴아메리카 현대소설의 운명이었을 것이라면 말이다.

- 전통성과 근대성이 복합된 사회적 이중구조는 리얼리즘을 완전히 극복한 것도 아니고 모더니즘을 완성한 것도 아닌 붐 소설의 이중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리얼리즘은 역동적 현실보다 정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데 적합한 예술적 거울이다. 19세기적 유럽의 리얼리즘은 라틴아메리카 역사의 일그러지고 흔들리는 상을 반영해내기에는 그리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리얼리즘이 모더니즘으로 이행하면서 비로서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그들 사회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역동적인 상을 표현해낼 다원적 서사 구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현실 표현에 맞는 그들 나름의 언어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모더니즘적이면서 리얼리즘적이고,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인 그런 이중적 언어였다. 또한, 그것으로 표현하려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현실과 마찬가지로 이중적 이며 변증적이어야 했다. 그것은 원주민/이주민의 이중적 구조와, 자연/문화의 역동적 구조를 근대/전통의 이중적 언어와 역사/신화의 변증적 마술로 종합해낼 수 있었던 마술적 리얼리즘이었다.

- 아마도 마술적 리얼리즘의 이중성과 변증성에서 모더니즘과 탈근대주의가 동시에 논의될 수 있는 배경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 그 이중성이 문화적 상대주의를 부추기려 한다면, 그 변증성은 역사와 신화가 혼재하는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마술적 리얼리즘의 이름으로 절대시하려 한다. 서구의 이성중심적 형이상학의 뿌리를 흔들어 댔다는 보르헤스의 탈근대적 사유에도 모든 문화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상대주의적 관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에 있어 인디언 문화처럼 어느 문화가 다른 문화에 의해 억압될 수밖에 없다는 라틴아메리카 부르주아 계급의 논리가 이중적으로 얽혀 있다.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기원과 전통을 바라보는 시각의 이중성을 내포한다. 가르시아 마르께스도 서구 전통의 합리주의에 대한 믿음을 거부한다는 데서 탈근대주의적 작가로 평가되지만, 그의 탈근대적 역사 인식도 이중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성중심주의를 배척하고 진정한 라틴아메리카의 본원으로 되돌아가려는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에도 이미 자연/문화, 원시/문명, 라틴아메리카/서구의 이항 대립에 근거한 이분법적 서열화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가르시아 마르께스에서도 보르헤스와 마찬가지로 라틴아메리카의 중심을 부정하려는 탈근대적 사유와 중심을 확인하려는 근대적 사유가 얽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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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08/10/21 16:45 Trackback. : Comment.
 

진보는


합리적인 사람은 세계에 자신을 적응시킨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계를 자신에게 적응시키려는 시도를 고수한다.
그래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

- 죠지 버나드 쇼



정말 짜릿한 말.
뒤집어서 생각하고 싸우는 훈련이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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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점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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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 2008/10/21 09:28 Trackback. : Comment.
 

현실의 왜곡된 이미지


오늘날에는 더이상 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기껏해야 현실의 왜곡된 이미지들만 존재할 따름이다

- 고트프리드 벤




이미지의 싸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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