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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 : 우리 스스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변화가 되자


빵과 장미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James Oppenheim)
“모든 이에게 빵을, 그리고 장미도” - 서부 여성들의 슬로건(제임스 오펜하임)
(“Bread for all, and Roses, too"-a slogan of the women of the west)


우리가 환한 아름다운 대낮에 행진, 행진을 하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컴컴한 부엌과 쟂빛 공장 다락이
갑작스런 태양이 드러낸 광채를 받았네.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를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착취당하지 말아야만 하는데,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할 때 수많은 여성이 죽어갔네,
그 옛날 빵을 달라던 여성들의 노래로 울부짖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 여성의 영혼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을 위한 것 -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우리들이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이 더 이상 없네.
그러나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누네.
(시 번역: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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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 2008/11/26 13:38 Trackback. : Comment.
 

민주, 반민주도 아닌 탈민주


정확한 진단...
그리고 뒤집기의 상상력......
그것이 겠지??


[세상읽기] 탈민주 시대의 도전 / 조효제
한겨레, 2008.11.21.금

얼마 전 외부 강연 자리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적’인가? 우문 같기도 하고 현문 같기도 하고 강사를 떠보려는 것 같기도 한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질문자의 심정에 공감한다. 그런데 현 정부가 완전히 반민주적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지나친 평가일 것이다. 적어도 보통사람들이 이해하는 민주정치와는 차이가 나는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민주적이지도 않다. 이제 겨우 전체 임기의 15%를 넘긴 시점에서 민주적 관행과 제도를 얼마나 많이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는가. 한마디 더 하자면, 현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즉, 우리는 대단히 독특한 성격의 정부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완전히 반민주적인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민주적인 것은 더더구나 아닌,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관심도 없고 상관도 하지 않는’ 정부 같다”라고.

정치학자 벤자민 바버는 최근 금융위기 직후에 쓴 글에서 전세계 민주주의가 ‘탈민주’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바버의 설명을 위의 해석과 연결시켜 본다면 우리는 반민주 시대를 거쳐, 민주 시대를 지난 후, 탈민주 시대에 진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탈민주 시대의 핵심은 ‘반민주도 아니고 민주도 아니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신경을 끈’ 정치 허무주의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일반대중은 무관심으로 호응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삼중고를 겪고 있는 것인데, 이 모든 점이 크나큰 도전이 되고 있다. 탈민주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도 색다르고, 우리에게 인식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마땅한 대응방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러한 어려움이 초래한 결과들이 당장 눈에 들어온다. 정부·여당이 이렇게 인기가 없음에도 야당의 지지도가 왜 바닥을 기는가? 시민사회 진영의 여러 모색들이 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가? 부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계급적인 이해관계를 확실히 챙기고 있는데, 일반대중·서민들은 왜 소가 닭 보듯 하고 있는가?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시장만능주의에 목을 걸다시피 했던 정부가 월가 사태를 맞아 코가 납작해져 대오각성 해야 옳을 터인데 왜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일까? 기득권 세력이 하는 행동을 보면 과거의 반민주 시대가 연상되기는 하는데 왜 일반대중은 꼭 그렇게만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일까? 시민사회단체 중 일부의 일탈이 왜 시민사회 전체의 침체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가?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탈민주’ 개념이 적어도 설명의 일부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탈민주의 공세 앞에서 전통적인 여러 대응방식이 맥을 못추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탈민주 시대의 복합적인 상황에 대해 반민주 시대의 흑백 패러다임으로 대응하려고 하는 우리 상상력의 빈곤을 성찰할 필요도 있다.

한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탈민주에 맞서고 있는 전체 블록의 지적·심리적·인지적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민주정치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어떤 새로운 수혈이 간절히 요구된다. 전통적으로 이 블록과 별 관계없던 이들, 그러나 탈민주 시대에 분노를 느끼는 새로운 세대, 이질적으로 여겨질 만큼 자유분방한 새 정신들이 이 블록에 들어올 수 있도록 호의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한국의 오바마는 나올 수 없다.

바버는 탈민주 시대의 불확실성을 감당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재민주화’의 길을 찾자고 했다. 경청할 만한 제안이라고 본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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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2008/11/21 12:18 Trackback. : Comment.
 

자유의지족 freewill people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늘 자유에 대한 열망을 갖게 마련이지만,
공포가 거의 언제나 그 열망보다 더 강력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의 모리스Maurice 황제(582~602)는
한 가지 예외를 발견했다.

그가 사로잡은 3명의 슬라브족에게는 놀라운 점이 있었다.
그들은 무기 없이 오직 기타와 지터 zither(하프의 일종)만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의 기쁨, 들과 신선한 바람의 기쁨을 노래하며 유랑했다.
그들은 황제에게 "전쟁을 모르는 사람이 열정적으로 음악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노래는 자유 의지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이들은 자유의지족freewill people 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제정 러시아의 피오트르 대제가 모든 인간은 정해진
의무를 가진 법률적인 재산의 일부분이라는 칙령을 내려
이런 사람들을 금지했던 1700년에도 이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150년 후 우크라이나의 해방 농노였던 타라 세브첸코는
자유의지족과 똑같은 전통 속에서 노래했다.
그는 "자유가 술츃나 차르 때문에 잠자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자연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다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라.
저 검은 산에게 물어보라.


- 테오도르 젤딘, <인간의 내밀한 역사>, 21p

자유의지족.....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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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아기토끼


읽었으면..하고 생각하는 책과
병윤이가 좋아하는 책이 다를 때가 많다.
그럴 때면 꼭, 병윤이가 골라오는 책 옆에
내가 원하는 책을 하나 끼워서, "이것도 읽어줄게..." 한다. ㅋㅋ
그마저도 병윤이에게 "싫어"하고 거부당하면 슬프지만......
당장은 싫어해도 언젠가는 다시 찾으니..그래도 뭐 괜찮다.
(한번은 <엄마 마중>을 사왔는데 처음엔 읽기 싫다고 책에다가 펜으로 마구 낙서를 해버렸다.
임병윤 하고 자기 이름도 아주 크게 써 놨다.....
기껏 사온 책을 거부당하니  울뻔했지만, 신기하게도 한 달 쯤 흐른 뒤 그 책을 다시 찾았다.
그러더니 지금은 병윤이가 자주 찾는 스테디 문고 중 하나가 됐다.......ㅋㅋ
당장 싫어 한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요즘 병윤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미운 아기토끼>>다.
누군가들에게 물려 받은 전집류 책 중의 하나다.
물론, 나는 그 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뻔한 교훈성도 그렇고 앞 뒤가 맞지 않는 문장과 전개가 도드라지는 부분도 있고,
퍽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다.
그런데 그 책을 한 번에 세번이나 읽어 달랄 때가 있다.
아주 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등장하는 동물에 따라 목소리를 변조해서 들려줄땐...끼륵 끼륵 웃느라 정신 없고.
호랑이 구령에 맞추어 여러 동물들이 체조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자기 유치원의 풍경을 보듯 방방 뛰며 체조까지 해 보인다.
그리고 어제는 동물 친구들이 '미운 아기토끼'를 따돌리는 장면들이 끝난 후엔
"나쁜 친구들!!!"하면서 소리까지 친다.

나의 고정된 시각에 갇히어 책을 평가했으니,
병윤이가 느끼는 재미를 느끼는 어떤 요소들이 그 책 속에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뭐, "'재미'있는 것이 '문학적'인 것이 아님엔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린이들이 느끼는 '재미'가 내가 알지 못하는 '문학적 감수성, 문학적 재미'의 비밀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병윤이의 시각으로 그 책의 재미를 따라 읽으니..뭐 괜찮은 거다.
여러 동물들이 등장한다는 점.
그 동물들이 함께 모여 달리기를 하고,
호랑이 구령에 맞추어 준비운동을 한다는 점...등의 상상력....
요즘 아동문학에 호방한 상상력의 부족이 문제점으로 등장하고는 하는데.
그 지점에 어느 정도 부합할 만한 요소들이 분명 존재했던 거다.
언어가 만들어 내는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그림책 속의 동물들의 그림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그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대해 파악하고 있던 것이고.
병윤이와 나. 더 나아가 어린이와 어린이의 시각...
그 두 개의 가치를 절충할 수 있다면
아동문학을 읽는 좋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병윤이와 함께 동화읽기...
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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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크리티시즘


New Criticism
1930년대에서 195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성행한, 작품 자체의 객관적 분석에 의한 문학비평 방법.

1941년에 랜섬의 동명()의 평론집이 나온 이후 이 명칭이 굳어진 듯하다. C.브룩스워런·테이트블랙머·랜섬 등이 중심인물이며, 그들에게는 서로 다른 점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멀게는 콜리지, 가깝게는 T.S.엘리엇과 리처즈에 이어지는 사고방식으로, 문학을 윤리나 과학·역사 등에서 분리하여 작품 자체의 분석과 가치부여에 전념한다. 특히 언어에 대한 관심이 강하여 패러독스나 아이러니를 중시하고, 복잡한 의도가 숨어 있는 시편()의 분석을 즐긴다.

《스와니 리뷰》 《캐년 리뷰》 등의 소문예지()를 통해 급속하게 세력을 확대하였고, 현재는 대학에서 문학강좌에서 많이 적용되고 있다. 한국에 이 방법론이 도입된 것은 백철()의 《I.A.리처즈씨와의 문학대화》(1958), 김용권()이 스톨만의 《뉴크리티시즘》(1959) 등을 번역한 데서 비롯된다. 또한 한국 고전문학에서는 정병욱()이 《쌍화점고》에서, 현대시에서는 김종길()이 《의미와 음악》 등에서 뉴크리티시즘을 적용하였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4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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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08/11/19 14:13 Trackback. : Comment.
 

신비평


nouvelle critique
1950∼1960년대에 걸쳐 전통적인 문예비평과 대립하여 눈을 끌기 시작한 프랑스의 새로운 비평.

전기적() ·실증적인 연구를 근거로 하는 강단비평()이나 종래의 인상비평을 피하고, 어떤 특정한 관점에서 작품을 해석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작품의 분석을 통하여 작자의 창작정신을 파악하려고 하는 비평에는 테마론 비평(G.풀레의 《인간적 시간의 연구》(1950∼1964), J.리샤르의 《말라르메의 창조적 우주》(1961)) 및 정신분석 비평(C.모롱의 《장 라신의 작품과 생활에서의 무의식》(1957)) 등이 있고, 언어표현으로서의 작품 자체의 구조를 알아보려는 비평에는 구조주의적 비평(R.바르트의 《영도()의 에크리튀르》(1953)), 수사론적() 비평(G.주네트의 《피규르》(1966)), 그리고 사회학적 시야를 문학비평에 도입한 마르크스주의 비판(L.골드만의 《소설의 사회학》(1964))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4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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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2008/11/19 14:10 Trackback. : Comment.
 

소유냐 존재냐..


스웨덴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간은 소유욕과 존재욕구를 가지는데 소유욕은 경제적 욕망을, 존재 욕구는 인간과 인간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뜻한다고. 그런데 그 존재 욕구를 희생해 소유욕을 충족시키는 건 병적 사회라고. 공교육이 처음 가르치는 게 그런 거다. 사회 시스템 역시 그 가치관에 기초해 구축되고...

- 김어준, 한겨레신문,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중

병적 사회....
명바기 그 놈 땀시 더 심해지고 골병들고.
종부세니 뭐니 듣기도 싫고. 아우 지겨워.
토욜 촛불집회도 제대로 못하고....
전경들이 하도 길을 막아 놔서
왔다리 갔다리 헤매기만 했는데
91학번 선배 말로는 거의 10년만에 있는 일 갔다고...
참..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소유를 위해 모든 존재론적인 것들이 거부당하는.....

소유가 아닌 존재의 문제.....
참..아주 근원적 문제부터 뒤틀려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그래도,
막막함을 뒤집을 꿈...소망....자유를 가지는 것만이
명박이에게 이길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 아닐까 하는....

소유냐 존재냐..
책이나 읽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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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누구랑 살지...


하루 중 제일 끔찍한 시간은 아침이다.
병윤이와 입씨름을 벌이는 격전의 시간이기도 하다. 훗.
갖은 협박과 달램으로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휴우우우..
나의 방법에 무엇이 잘 못 되었는가 매일 성찰하지만,
시간에 쫓기면 이성적 방법들은 모두 삭제된다.
회유, 협박만이 내 머릿 속에 맹맹...
그러니..아침에 좀 여유있게 일찍 일어나서 깨우자 싶어도.
나의 귀차니즘은 시간을 망각해 버린다. 흑.

오늘도.
"병윤아, 너가 이러면 엄마가 경찰에 잡혀가요."
"왜?"
나는 잠시 슬픈 표졍을 지으며
"너 잘 못 키웠다고......."
아..정말 치사하고 가증스런 방법.
"아빠는?"
"아빠도 같이 가지..."
병윤이가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말한다.
"그럼 난 누구랑 살아..."
세상에. 이런 넘이 다 있나.
엄마 아빠가 잡혀가거나 사라지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자기가 누구랑 살아야 할까 걱정하는 저................아흑..
내가 잠시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에 병윤이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럼 고모랑 살아야겠다."
이 당황스럼.
병윤이의 행동을 바꿔 보겠다고 협박을 했던 내 말을
다시 삼키겠금 만드는..............

협박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이성을 찾아 대화를 주고 받으며......
옷도 입고 세수도 하고....대문을 나섰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하다.
'혹시..병윤이는 엄마, 아빠가 싫은가....'
없어도 될 일을 만든 발언의 책임자인 나는..
다시 아이의 말 때문에 상처받고......혼자 자문하고 결국...
"나도, 엄마 없으면 못 살지.."
하는 병윤이의 대답을 억지로 끌어내고서야 만족했다. ㅎㅎ

아......정말...
협박의 대화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법인가 보다.
되려 내가 당했으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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