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심리를 이해한다는 것
자기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많은 심리적 고통들이 있을진데,
타인인, 그것도 이미 시기를 거쳐 아득한 옛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어린이'의 심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들었다...어린이 심리 치료와 관련된 서적이다.
아동문학에서 어린이를 더 고민하고 싶었고,
병윤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이 책에서 얻은바를 축약하자면,
어린이는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창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른에게 모든 것을 지배당하는 어린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놓는
아주 기본적 욕구까지도 가로막혀 있었다.
어린이의 심적 고통의 뿌리는 모두 그 안에서 출발한다.
어른과 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내면을 발설해내는 환경만 갖추어져도
심리적 고통의 많은 부부분이 해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를 이끌어내기까지
주어지는 여러 가설과 전제들에는 의문이 생기고 거부감이 드는 대목이 있다.
이를테면 어린이의 심리의 결과를 학업능력과 결부시키는 태도다.
'머리는 좋은데 심리적 결함이 있어 학업 능력이 떨어진다'라는 서술 방식이 이 책의 바탕에 흐르고 있다.
심리적 고통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으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 '고통' 속에 수렴되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일테다.
그런데, 왜 아이들의 심리를 언급할 때에는 항상 '학업'의 성취도가 따라 붙어야 하느냐 말이다.
학업의 성과가 좋다고 심리적 아픔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면,
이 서술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또, '학업' 때문에 오는 심리적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어린이'를 '공부', '학업'과 무리하게 연결짓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어린이의 심리를 해석하는 틀로서도 작용한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상담가의 자질로서 어머니의 모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것을 여성의 유전적 형질에 일부 타고난다는 표현을 보고 까무라쳤다.
주디스버틀러는 여성성이라는 이름으로 공통의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것에 반대한바 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여성인 나 역시도 '모성'을 강조하는 순간
해방감 보다는 억압의 기제들이 더 커다란 폭풍을 만들어 내 삶을 집어 삼키기 때문이다.
여성의 현실 보다 '모성'이라는 관념이 도리어 여성을 가둔다는 것은.
그만큼 '모성'이란 개념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들에 의해 강조되고 부풀려진 신화와 같은 것이라는 말이된다.
아무튼 '한국 여성의 천부적 모성애' 덕택에 상담가 기질을 타고 났다고 하는 서술은....
어린이를 해방시킨 다는 전제로 여성을 다시 가두어 버리는 모순을 가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어린이를 제대로 해방시킬리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