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이렇게도 굴려보고, 저렇게도 굴려보며,
문학사의 '진의'를 캐보고저 하는 연구적 시도들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그렇게 밝혀진 진의들은 '붉게' 빛나고 있으니...
모름지기 '연구'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와 함께, 1920년대 황폐한 인프라를 뛰어넘을 '소년운동'을 조직하여 어린이들에게 이야기의 마당을 선사한 앞선 아동문학가들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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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메일로 연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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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교육 사태 해결을 위해, 신명철 대표이사 퇴진과 사태 해결의 중심에 대주주인 전교조가 나서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성명서를 준비 중입니다.
뜻을 함께하시는 분들은 이메일 ygs0720@naver.com (이계삼)이나 댓글로 연서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고, 이름과 소속(직업, 학교), 이메일과 연락처를 적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주변에도 이 뜻을 많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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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우리교육 사태’의 진실과 정의를 위한 제언>
먼저, ‘우리교육 폐간’이라고 써 본다. 이 문장 앞에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깊은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발을 동동 구른다. 우리가 제출하는 이 글은 이 안타까운 파국 앞에 내던지는 작은 고뇌의 몸부림이며, 이 사태가 부디 정의(正義)의 궤도에 올라서기를 바라는 염원의 발로이다.
돌이켜보면, 이 시대에는 인간을 말초적 쾌락과 금전의 노예로 이끄는 교활한 언어들은 호사스런 나날을 이어왔지만, 힘없고 약한 이들의 고통을 응시하는 진실의 언어들은 언제나 패퇴의 길을 걸어왔다. 진실을 추구하는 매체들은 무엇보다 ‘돈’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언제나 존폐의 기로에서 안타까운 생존 투쟁을 이어와야 했다. 그것은 대중의 무관심과 교활한 권력과의 싸움이었고, 무엇보다 ‘자본’과의 싸움이었다.
교육현장을 전혀 가르치지 않는 기이한 교원양성기관을 거쳐 교단에 선 한국의 교사들이 가장 많이 의지했던 매체가 바로 우리교육이었다. 집단 가학 체제나 다름없는 초․중등 교육 현장의 파행과 왜곡에 마음 저리며 고뇌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매체가 또한 우리교육이었다. 우리교육은 전교조 운동이 태동하던 시절의 건강한 열정이 낳은 옥동자였고, 바른 교육을 꿈꾸는 교사들의 열망으로 자라온 나무였다.
우리교육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다. 때로 진실의 당파성과 교사 대중의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요구 앞에서 방황하기도 하였으며,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물론, 그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 또한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교육은 폐간을 기정사실화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지혜롭게 사태를 풀어 갈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우리교육 신명철 대표이사가 편집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월간 우리교육을 단 세 명의 기자가 만들도록 한, 실로 믿기 어려운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많은 독자들은 우리교육에서까지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 것에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독자들이 그러했으니, 그 구성원들은 오죽 했겠는가.
(주)우리교육의 극심한 누적 적자가 회사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상황에서 무언가 획기적인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선택의 기로에 내몰린 그의 고뇌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과연 이 문제가 ‘사람을 잘라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우리교육이 겪었던 방황, 혼란, 그리고 경영상의 실패는 교육현장의 변화, 교사 대중의 변화, 그리고 크게는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세속의 변화와 가장 큰 연관을 가진다. 교사들은 종이매체를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정도로 쫓겼고, 교육의 시장화는 급류를 탔지만 교육운동은 점점 힘을 잃어 왔으며, 교육담론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교직 사회의 보수화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큰 변화를 조망하면서 매체의 자태변환의 여러 가능성을 차근차근 짚어가면서 풀어가는 것이 상식적이며 지혜로운 태도였다. ‘구조조정’과 ‘경영 논리를 통한 압박’은 최소한 우리교육의 변화를 추동하는 핵심 잣대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었다. 그동안 월간 우리교육과 출판물을 통해 일관되게, 너무나 일관되게, 옹호한 것이 바로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꿈’이 아니었던가.
한때 중재단의 노력으로 구조조정의 독소를 최대한 누그러뜨리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만들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주)우리교육 이사회의 추인을 받아 현실화될 직전의 단계에까지 갔었다. 그러나, 신명철 대표이사는 이 사태에 대한 원론적 책임을 조금도 지지 않겠다는 듯 대의원대회를 앞둔 전교조 위원장의 ‘신뢰 확인’ 요구를 빌미로 기자들에게 사실상 항복을 강요하는 연서명을 요구함으로써 결국 사태를 파국으로 이끌고 말았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신명철 대표이사의 퇴진이다. 그가 퇴진해야 할 이유는 위에서 충분히 적시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겠다.
둘째는 전교조 본부가 이 사태 해결의 중심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진후 위원장은 (주)우리교육 대주주의 권한을 집행할 자격을 조합원으로부터 위임받았다. 전교조 위원장은 이제 이 사태의 중심에서 대표이사의 퇴진과 월간 우리교육의 전환을 위한 논의를 중심에서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교육의 파국을 안타까워하는 조합원들의 바람에 부응하는 마지막 남은 선택이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우리교육 사태가 봉합의 수순을 밟게 된다면, 독자 대중은 이렇게 해서 정상화된 우리교육에 대해 무관심과 무시로 응대할 것이 자명하다. 물론, 뜻을 같이하는 필자들 또한 절필로써 응대할 것이다. 수많은 독자들이 우리교육을 절독하게 될 것이며, (주)우리교육에서 발간되는 출판물 또한 비슷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교육을 성원해 온 많은 지식인, 교육운동가, 출판인들 또한 우리교육에 대한 애정을 예전처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교육의 기자 전원과 상당수의 구성원들이 회사를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교육은 사라져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과, 교사의 일상과 바른 교육을 위한 꿈은 어느 그릇에 담겨져야 하는가. 우리교육의 폐간은 매체 하나가 사라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교육현장의 급격한 보수화와 좌표 상실의 흐름을 크게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신명철 대표이사는 퇴진해야 한다.
전교조 본부는 이 사태의 중심에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2010년 3월 22일
신명철 대표이사의 퇴진과 우리교육 사태의 올바른 해결을 바라는
교육시민사회 관계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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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육 기획위원 양은주(광주교대), 이계삼(경남 밀양 밀성고), 이병곤(런던대학교 교육연구대학원), 이혁규(청주교대), 정용주(서울 백석초), 최병우(전북 남원 인월중고) 교사 가은경(경남 밀양 무안초), 권자영(경기 안양 평촌고), 김고종호(서울 계성여고), 김권호(서울 우이초), 김기명(서울 소의초), 김남철(전남 나주고), 김동일(서울 수락중), 김명숙(경남 진해 안골포초), 김명희(강원 강릉 왕산중), 김미희(충남 당진 계성초), 김민곤(서울 수락초), 김병호(경기 안양 신안초), 김성탁(경남 거제 마전초), 김영희(경남 진주 망경초), 김용만(경남 마산 합포고), 김용훈(경기 수원 영생고), 김유정(오정초), 김은하(부산 양동여중), 김정섭(경기 평택 합정초), 김종욱(충북 청주 운천초), 김준영(인천인명여고), 김지수(부산 동주초), 김진희(서울 상경초), 김태호(경기 의정부 효자고), 김현식(경북 포항 대동중), 류정하(경북 경산 하양초), 류재향(경기 이천 증포중), 문호영(울산 우신고), 민병성(충남 홍동중), 민정은(경기 부천 소사초), 박미숙(부산 신도고), 박선희(충북 청원 남일초), 박성만(경기 양평 조현초), 박지희(서울 창도초), 박진환(충남 논산 반곡초), 박현숙(경기 시흥 장곡중), 박현희(서울 독산고), 박현희(전남 화순초), 방효신(서울 중광초), 배경숙(서울 진명여고), 배성호(서울 수송초), 배이상헌(광주 무진중), 손은경(경남 김해 대곡초), 송수갑(전북 완주 삼우초), 송춘길(경북 구미 선산고), 신규진(서울 경성고), 심충섭(강원 강릉 왕산중), 안성진(경남 김해 덕정초), 안세영(부산 개림중), 안순억(경기 광주 남한산초), 안용순(서울 배명중), 안준철(전남 순천 효산고), 여태전(경남 마산 태봉고), 오태희(경북 의성 금성중), 유길재(전남 신안 지명고), 유승준(충북 충주 탄금중), 윤병렬(경남 사천중), 윤여강(일제고사 해직교사), 윤지형(부산 신곡중), 이경진(울산 신복초), 이규동(서울 도봉초), 이동훈(부산 범일초), 이명남(서울 영림중), 이무완(강원 삼척 서부초), 이미연(대전 정림초), 이선영(경기 부천 소사고), 이소영(경남 진해 안골포초), 이소형(전남 순천남초), 이영희(강원 속초여고), 이예은(경기 광명 소하고), 이정숙(강원 강릉 왕산중), 이정희(충남 금산 부리초), 이태환(강원 강릉 왕산중), 이현애(경기 의정부 솔뫼초), 이희옥(경남 전주 평화초), 임덕연(경기 안양 명학초), 임동헌(광주 전자공고), 임성무(대구 월곡초), 임정아(서울 서연중), 임종길(경기 수원 대평중), 정현진(광주 광천초), 조성실(서울 도봉초), 조영선(서울 경인고), 조영옥(경북 상주 내서중), 조은영(경남 김해 장유초), 조을제(강원 강릉 왕산중), 조진희(서울 영일초), 조향미(부산 개금고), 진웅용(서울 용화여고), 진정희(서울 태랑초), 차용훈(전남 무안 남악고), 최상용(강원 강릉 왕산중), 최선미(경기 부천 시온고), 최성수(서울 청량고), 최신애(강원 원주 북원여중), 최애영(경기 남양주시 천마초), 최유리(서울 고천초), 최은숙(충남 청양중), 최은희(충남 거산초), 최정숙(강원 강릉 왕산중), 최정현(경기 의왕 고천초), 최종순(서울 노원초), 최혜원(일제고사 해직교사), 한광수(이우중), 한학범(인천 장수초), 한화균(경북 김천 조마초), 허성옥(강원 강릉 왕산중), 현희승(서울 삼양초), 형은수(전북 전주 성심여중), 홍세은(서울 경기기계공고), 홍지희(서울 영등포여고), 황민자(부산 개금고), 황정원(전북 전주 서곡초), 황진우(서울 목운초) 대학 강수돌(고려대), 김경완(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류현종(제주대), 박찬영(부산대), 봉인권(경희대학교 학생), 양지연(한국외대 석사과정), 엄기호(연세대 박사과정, 우리신학연구소), 이선경(청주교대) 언론출판 강변구(사계절), 금현진(출판프리랜서), 김은영(휴머니스트), 김종필(나라말), 김헌철(출판노동자), 김현선(북에디터), 류우종(한겨레21), 류현영(출판노동자), 박선화(도서출판 텍스트), 박수용(지식산업사), 서정순(출판노동자), 성현석(프레시안), 송경희(출판노동자), 신관식(창비), 안명희(출판노동자), 여미숙(편집자), 용진영(출판노동자), 윤지은(도서출판 작은책), 윤홍은(비룡소), 이기웅(번역가), 이동훈(번역사), 이문영(한겨레), 이상덕(레디앙미디어), 이수정(디자인 달), 이영호(출판편집자), 이윤기(전업작가), 이은진(전 우리교육 기자), 이재성(길담서원), 이종우(나라말), 이한영(전 우리교육 편집자), 이희옥(), 임윤희(출판인), 임중혁(양철북), 전진경(화가), 정동철(인쇄노동자), 정보배(사계절), 정은경(출판노동자), 정인열(도서출판 작은책), 정현민(도서출판 작은책), 최규화(도서출판 작은책), 한라(출판노동자), 한진용(메이데이), 홍원기(출판노동자), 홍한별(번역가) 교육시민사회 권성태(이스트소프트), 김상정(전교조 상근자), 김선경(청년이그나이트), 김선아(고양파주비정규대안센터(준)), 김영미(충남 아산 송남중 학부모), 김정식(금산간디학교), 김혜은(인천여성회), 나규환(조각가), 박범이(참교육학부모회), 박효정(NHN),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백창우(음악인), 송경원(진보신당 정책연구원), 신호승(대안교육학부모연대), 심수환(부산교육연구소), 안학수(충남작가회의), 이미나 (교육공동체 두리하나), 이윤엽(판화가), 이치열(대안교육연대), 이형빈(전 서울 이화여고 교사), 장상욱(휴매니지먼트), 전누리(교육공동체 나다), 정윤희(시각예술가), 조성희(충남교육연구소), 조용진(용연학교), 최정우(작곡가), 최정현진(평화인권연대) (*현재까지 200명) |
아직, 시어가 일상어에 머물러 거친 느낌이 있지만...10분 친구 / 이정인
학교에서 쉬는 시간 10분씩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10분
학원 차 타고 학원가는 동안 10분
학원 차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10분
엄마, 10분만 놀다 올게요!
나는
친구들하고 놀 시간
10분씩밖에 없다.
내 친구는 모두
10분 친구들이다.---
제8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 수상작 가운데
| ‘우충좌돌’ 지식인 담론 분석 | |||||
| [더러운 철학] 김진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 |||||
| |||||
그러나 철학이 아닌 문학 관점에서 보자면, 더러움이야말로 진정성의 개념과 함께 중심적인 사유 대상이기도 했다. 가령 소설사회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루시앵 골드만의 논의가 그렇다. 더럽게 타락한 세계에서 인간이 자기 진정성을 증명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가 ‘더러운’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런 시대에는 오직 부조리한 방법으로 자기의 진정성을 증명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인물이야말로 예외적 인물(주인공)의 전형적 특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소설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철학자 자신이 철학과 철학하기에 깃든 더러움의 근거를 묻고, 그것을 확장해 지식인들의 담론과 오늘의 현실 전체에 대한 ‘우충좌돌’의 분석과 실천을 권유하는 글을 읽는 것은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좌충우돌이 아니고 우충좌돌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그래서 그의 주장은 좌와 우의 진영화된 담론의 착종된 논리를 내부로부터 해체(탈구축)한다. 그는 더러움의 현실적 조건으로부터 완벽하게 스스로를 분리시킨 후 구경꾼 특유의 위선과 위악의 제스처를 취하는 지식인의 세련된 지적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소외’ 대신 ‘소내’ 개념을 제시한 까닭 철학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 한국에서 철학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처럼 김진석에게 절실한 질문은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야말로 철학자뿐만 아니라, 일견 철학의 대중화 혹은 시장적 르네상스를 이루고 있는 오늘의 지적 상황에서 치밀하게 분석되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지적 상황을 생각해보면, 철학하기는 죽어가는데, 역설적으로 서구철학의 개념 수입은 번다하게 경쟁적이다. 가령 라캉, 들뢰즈, 지젝, 바디유, 랑시에르와 같은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글을 쓰는 비평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쓰이는 글들이 정작 오늘의 한국적 더러움에 대해서는 뾰족한 시각을 제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더러운 지적 풍토 때문인지 <더러운 철학>을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뜰에서 춤추는 사람이 64명 있다. 그중에 한 사람을 선발하여 그로 하여금 깃대를 잡고 선두에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지휘하게 한다. 깃대를 잡은 자가 절도에 맞게 지휘를 잘하면 무리들이 그를 존경하여 ‘우리의 지도자’라고 부른다. 깃대를 잡은 자가 지휘를 잘하지 못하면 무리들은 그를 끌어내어 이전의 위치로 복귀시킨다. 그리고 유능한 자를 다시 선발하여 선두에 끌어 올리고 ‘우리의 지도자’라고 부른다. 지휘하는 자를 끌어내리는 것도 무리들이고 끌어올리는 것도 무리들이다. 끌어올리는 것은 괜찮고, 끌어내려 교체하는 것은 죄가 된다면 어찌 이치에 맞는 것이겠는가? - 다산 정약용
요즘 다산의 글에 푹 빠져 있다.
삶과 문학이 하나인 삶,
아래로부터의 민권정치를 주장하고
공동소유만이 만백성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라 외치는 혁명성,
국화의 그림자빛을 수묵화와 같다하여 즐거워 하는 천진성,
손수 밭도 갈고 꽃도 심으며 선비들의 '손일'을 중요히 여겼던 부지런함,
실존적이고 혁명적이고 진실하고도 풍부한 다산의 글을
왜 이제서야 만났는지....이제라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