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 : 어떤 핀끝


좋은 言語 / 신동엽


좋은 言語 / 신동엽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 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구 기다려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으로 머리로
속속들이 구비돌아 적셔 보세요.

허잘 것 없는 일로 지난 날
言語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하지만
그때까진
좋은 言語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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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想界>>(1970.4월호)

* 고양이와 통한 날 카페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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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 2010/08/30 13:15 Trackback. : Comment.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OST


이제 모임에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가슴에 깊이 남았던 영화인지라 영화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영화를 본 후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해 OST를 질리도록 반복하며 들었다.
오늘, 그 음악이 몹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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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처럼



 
지난...금요일 밤...
옥상에 모여 술 마시며....
민들레처럼을 함께 불렀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민들레처럼 살아야지..다짐하기도 했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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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윤상, 이하나




좋네..^^;
내 첫사랑 같은 윤상....과 풋풋한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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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2010/08/20 12:36 Trackback. : Comment.
 

체벌


벨훅스는 어머니가 아이를 지배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모성 사디즘'이라 정의한 바 있다.
나, 역시 아이를 때린 적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아이가 3,4살쯤 되었을 때 일테다. 아이의 울음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울음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내 힘으로 아이를 멈추게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내 스스로 모멸감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들어지는 손. 아이였을 때부터 많이 맞고 자랐는데..그 때의 기억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아 굉장히 깊은 슬픔에 빠진 일이 있다. 마조히즘이 사디즘으로 역전되는 것이 한 존재 안에서 가능하다는 르네지라르의 분석은 명쾌하다. 지배하는자, 지배받는자가 존재한다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이 폭력을 만들어 낸다. 폭력으로 길들여진 자는 다시 폭력으로 지배한다. 몸에 그 구조를 익히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아이를 때리는 장면을 오늘에서야 동영상으로 봤다. 그런 장면은 찾아보는 편이 아닌데, '체벌'을 주제로 뭔가 써야할 일이 있기에 일부러 봤다. 이 안에서, 체벌의 이유는 간단하다.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빗자루로 후려 치는 교사의 모습이 섬뜩했다. 광기어린 사디즘이라는 말로 표현할 밖에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다. '체벌'의 문제... 그 안에는 아이들은 무조건 교사나 어른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이 도사려 있다. 아이가 자신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교사는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다. 역으로, 아이들은 무조건 교사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 때문에, 혹은 그것을 어겼다는 이유로 상처받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학교 구조가 폭력을 유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잖을까. '체벌'이 멈추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구조를 평등하고도 인권친화적으로 바꾸어내는 일이 병행되어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아이들을 규제할 새로운 방안을 만들어 놓고 체벌금지를 운운하라는 의견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폭력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구조를 대체하라니. 우리의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인권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한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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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 오, 사랑 / 봄눈




참,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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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 걸어가자




걸어가자 - 루시드 폴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걸어가자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자
후회없이 다시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때
기억조차 없을때
두려움에 떨릴때
눈물이 날 부를때
누구하나도 보이지 않을때
내 심장 소리 하나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때
기억조차 없을때
두려움에 떨릴때
눈물이 날 부를때
누구하나도 보이지 않을때
내심장 소리 하나 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걸어가자(걸어가자)
걸어가자(걸어가자)
걸어가자(걸어가자)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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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의 노래를 들으면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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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2010/08/19 16:48 Trackback. : Comment.
 

어설픈 주인공


나처럼 어설픈 성격의 캐릭 하나 만들어서,
같이 노는 중이다....ㅋㅋㅋ
이렇게 신날수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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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


적은 돈이지만,
원고료와 인권교육으로 번 돈을 저금했다.
돈 벌고 쓰는 것에 있어서 별 개념이 없는지라.
어디로 버는지, 어디로 쓰는지 모르고 사는 것이 나다.
그런, 내가 저금을 한 것이다.ㅋㅋㅋㅋㅋ

꿈은 딱 하나.
방과후 자유학교 만들기.
이렇게 모아가지고 만들 수나 있겠어? 라고 말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돈의 액수 보다도,
그 돈을 모아가는 심정이겠지 하고 '순수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ㅋㅋ
돈도 모으고, 지식도 모으고, 감수성도 모아가는 기간으로 말이다.
물론, 함께 할 사람도...^^;

우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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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록. 문학


5.18에 대한 책과 영화를 봤다.
황석영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1985년)
김남중의 소년소설, <<기찻길옆 동네>> (2004년)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 (2007년)


폭도가 아니다. 민주화 투쟁이고,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그래, 섬처럼 외롭게 존재했던 광주 시민들은 울부짖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화려한 휴가'라고 하는 작전명령에 따라 술에 취한 군인들이 곤봉을 휘두르고 총을 쏘아 대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독히 목격했는데도, 언론에는 그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했을 때 그들이 느꼈을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폭도라니.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그런 절규와 분노를 가득 담고 있다. 하루, 하루, 광주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눈 앞에 생생히 그려져 있다. 전쟁터. 스페인의 내전을 다뤘다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떠오를만큼. 1980년 5월 광주는 국가가 광주 시민에 대해 저지른 전쟁이었던 것임엔 분명했단 생각이 들었다. 전쟁. 살육.

이 책을 읽고 난 뒤라 더욱 그랬을까.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는 참 싱거운 영화였다. 무고한 시민들의 항쟁 참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의 전반부에는 광주 시민들의 순수한 모습을 그려내느라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화염병을 들고 전면에 대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더 것도 그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의 이러한 관점이 보는 내내 내 마음을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결국, 마지막의 결혼식 장면은 이 영화에 대한 내 인상의 의미를 정리할 수 있게 해줬다. 죽었던 이들이 모두 살아서 그 사진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면 이요원의 상상씬인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다. 광주시민부터 작전 명령을 내린 군인까지 들어 있다. 그도그럴 것이 이요원의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었고, 광주에 내려 왔던 군인과 친분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 영화는 애매한 휴머니즘으로 마무리 됐다고 보여진다. 결국,  광주항쟁까지도 애매하게 만들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휴가'라고 하는 잔혹한 작전명령을 영화 제목으로 내세웠던 것을 깊이 충족시켜주지 못했다고 할까. 무고한 시민의 순수한 마음에 집중한 탓에, 이 영화는 광주 항쟁이 폭죽처럼 터졌다 사라진 하나의 '화려한 추억'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김남중의 소년소설은 모두 두 권이다. 첫번째 권은 1977년의 이리역 폭파사건을 두번째 권은 광주 민주항쟁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첫 권의 경우엔 이리역 폭파사건이 주요 쟁점은 아니다.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 사건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마저도 후반부에 일어난다. 사건 자체가 소설의 의미를 살리고 있지는 않았다. 이 목사를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밀도 있고 다루고 있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반면 두 번째 권에서는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다. 교회를 중심으로 야학의 청년들이 광주항쟁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청년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라서 가진 한계 일까. 어린 주인공들은 주변으로 밀려 나 있다. 사건에서 한 발 짝 떨어져 있는데, 난 좀 지루하게 여겨졌다. 첫 권 보다 읽는 맛이 더 밋밋했다. 숭고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감동이 그렇게 강하게 전달되지는 못한 것 같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말이라 그럴지 모르겠다. 오히려, 인간의 양심과 죽음에 대해 전율할 감동을 만들어낸 공선옥의 청소년 단편소설 '라일락 피면'이라고 하는 단편을 다시 한 번 읽고 싶게 만들었다. 2004년 작품이라, 그 때 읽었다면 느낌이 달랐을지 모르겠다. '광주'를 다룬 소년소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엄청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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