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도
우울한 S언니 옆에, 우울한 자태의 내가, 아이를 안고 있는 H와 함께 밤 10시에 근처 공원에 갔다.
일곱살 난 아이 둘, 다섯살 난 아이 하나는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가, 바둑 두는 노인 옆에 앉아 구경하고 있다.
시원한 바람 속에 벤치에 앉아 있는 것도 좋지만 웬지....
"언니, 소주 한 병 그냥 벌컥 벌컥 들이키고 싶네요"
"야, 네 정신상태가 나랑 똑같구나"
아이를 안고 있는 친구를 붙잡아 놓고 미안한 마음에,
"우리 소주나 한 잔 할까?.."
라고 더듬더듬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
"아니, 막걸리! 난 먹걸리!"
그래.그래. 그래서 난 네가 좋다!
오천원을 들고 슈퍼로 달려가는데,
"야야 난 처음처럼이다. 아니면 프래쉬나. 그거 아니면 안돼!"
으이구. 까탈스런 입맛이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래도 좋다!
아이들이 먹을 간식, 처음처럼 한 병, 장수 막걸리 한 병, 종이컵 세 개, 오다리 두개를
오천 7백원을 주고 사서 검은 봉지를 들고 다시 공원으로 향했다.
종이컵에 막걸리와 소주를 따라 한 잔 마시니 주절주절 넋두리가 절로 나온다.
"요즘은 참.......희망... 의지 뭐 이런 거.. 많이 소진해 버렸어...아..여기 벤치에 그냥 누워 자고 싶다!"
"야야..그러지는 말자!"
"인생 참 우스운거야. 뭐든...예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한 순간에 일어나... 전혀 못할 것 같은 것 해버리는 것도 정말 한 순간이야..노숙? 할 수 있을 것도 같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12시.
현관 건너편 나무 밑에 어떤 남자가 셔츠를 벗고 런닝만 입은채 고개를 푹 숙이고 담배를 피고 있다.
술냄새가 여기까지 풍겨 올것 같은 분위기.
아니나 다를까 내 남편이다.
"으이구 으이구 아빠 또 취했다!"
아이가 아빠에게 달려갔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삼십대 중반의 나, 삼십대 후반의 남편.
우리는 왜 그렇게 힘이 든걸까.
그리고 뭐가 그렇게 힘이 든걸까.
남편을 부축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