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 : 어떤 핀끝


메뚜기-김환영


메뚜기
김환영

아버지는
일을 따라
뛰어다니고,

우리들은
메뚜기처럼
이사 다닌다.

(글과 그림, 2009년 11월)

목요일마다 우리 단체가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 함께 책을 읽는다. 서사장르만이 아니라, 동시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응이 별로다. '동시'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가현이는 인상부터 찌푸린다.

"난 동시가 제일 싫어요. 동시 나오면 귀를 막아요"
"왜 그렇게 싫어?"
"몰라요. 그냥 싫어요. 난 동시가 정말 싫어!"

더 이상 이유를 묻지 못했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동시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것들을 읽자고 설명하는 것도 무리겠구나 싶었다. 이유가 뭘까? 동시교육이 잘 못된 것일까? 아니면, 동시 자체가 아이들 마음이 가 닿지 못하는 것일까.

난 어릴적 동시를 좋아했나? 초등학교4학년 때 일기 숙제를 채울 내용이 없어 '동시짓기'라는 묘안을 생각해 낸 일이 있다. 그리고는 말도 안 되는 시를 지었다. 천사들이 바구니를 타고 내려가면서 훠이훠이 꽃을 흩뿌린다는 내용이었다. 연필 자루에 있는 그림 속 장면을 동시로 '번안'한거다. 그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얼마나 우습던지. 동시라면 의례 그런 내용을 담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어릴적 읽었던 그런 류의 동시는 창작동요대회가 가진 분위기와 너무도 닮았다.

항시 어린이날이면 열리던 창작동요대회를 보며 가슴 가득 버터를 넣은 것처럼 소름이 돋았던 그 때가 떠오른다. 인형처럼 차려 있고, 하나같이 똑같은 자세로 입을 쩍쩍 벌리는 그들이 우스웠다. 예쁘고 귀여운 것만 노래하는 그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법한 날개 단 천사들이었다. 사실, 천사들의 어여쁜 노래는 어린이의 삶과 무척 괴리된 진공의 거짓 세계다. 아무런 감동을 느낄수도 없으며, 따라 부르고 싶은 감정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나지도 않는다.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세상에 대한 감각을 폭넓게 확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린시절 동시를 보며 해보지 못한 것을 지금 해본다. 김환영의 '메뚜기'가 열살의 나를 가만히 불러냈다. 그 때, 이사를 참 많이도 다녔더랬다. 경기도와 서울 변두리를 오갔다. 부평, 광명, 개봉, 신길. 고강동, 화곡동. 초등학교만도 세 번을 옮겨 다녔다. 아이들이 이사를 한 다는 것은 벼락을 맞는 것처럼 갑작스럽고도 커다란 충격이다. 부모가 모든 계획을 짜 놓고, 이사를 떠나기 며칠 전에 통보만 받을 뿐이다. 그 부모의 속은 오죽하랴마는, 애써 사귄 친구와 헤어질 것을 앞두고 있는 어린이 역시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더더군다나 어린이들은 공간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하다. 이사를 하게 되면, 그 친구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니 말이다.

"일을 따라 뛰어"다닌 아버지는, 정말 이사 할 때 마다  일이 달라졌다. 그 아버지를 따라 팔딱팔딱 뛰어 다니며 집을 옮겨다녔다. 이사하고 나서 내가 가장 즐겼던 일은 언제까지 살지 모를 그 동네를 휘휘 둘러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어딜 가면 문방구가 있는지, 또 어디를 가면 놀만한 곳이 있는지, 또 어디를 가면 시장이 있는지, 뚜벅 뚜벅 걸어다니며 동네를 탐색했다. 자기 살 곳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지만, 빠듯한 살림 때문에 살 곳이 매번 바뀌는 불편함을 겪었지만, 내가 사는 그 순간의 동네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 더 재빠르게 뛰어다니던 나를 기억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자기 이야기를 꺼내어 놓을 수 있는 그런 동시들이 많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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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집 - 김환영



달팽이 집
김환영

달팽이는 날 때부터
집 한 채씩 지고 있으니

월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전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몸 집이 커지면
집 평수도 절로 커지니

이사 갈 일 없어 좋겠습니다!
사고 팔 일 없어 좋겠습니다!

뼛속까지 얼어드는
엄동설한에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
불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지난 여름,  용산 현장 그림책 작가 전시회에 걸렸던 김환영님의 시와 판화다.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 "불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땅을 팔라던 백인들 앞에서 "어떻게 공기와 땅을 사고 팔 수 있겠냐"는 어느 인디언 추장의 서글픈 연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너무 낯설만큼 우리는 모두 근대의 메커니즘 안에 들어와 있다. 집을 소유하고 나서야, 태어난 이후 주욱...30년 넘게 해왔던 월세살이 전세살이 걱정하지 않게 되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욕조' 있는 집에 산다는 것에 남편과 부둥켜 안고 얼씨구나 좋아했다. 우리들의 이런 순진한 마음도, 근대의 메커니즘 안에 집을 사고 파는 행위로만 해결 가능한 일이니...몸둘 바를 모르겠다.

또한, 이 시를 읽고 나서 곧장 떠오른 것은 어릴적 상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세들어 사는 주제에"라며 나에게 마구 물총을 싸댔던 주인집 남자아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서, 일하고 돌아온 엄마를 붙잡고 "XX가 나보고 세들어 사는 주제래.."하며 으앙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그 서글픔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다 타버린 건물 앞에서 6년 형을 선고 받고, 3000쪽이 넘는 수사기록이 공개되지 않는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지 모르겠다. "세들어 사는 주제.."라며 물총을 싸듯, "세들어 사는 주제에..." 뭐 그리 할 말이 많냐고 공권력이 이들에게 총탄을 날리고 있다.

그래도, 이 시는 서글픔 속에만 머물게 만들지 않는다. 달팽이를 보고,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공기'와 같은 그의 집을 보고 부러움을 느끼는 내용이지만, "....좋겠습니다"로 반복되는 후렴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선언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두 손 발짝 올려 만세, 만세, 를 외치듯.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다! 라고 손을 번쩍 들어 자기 존재를 드러내듯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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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김환영


뿌리
김환영

풀을 뽑으면
여기가 내 땅이라고
흙을 한 웅큼한
웅큼씩 쥐고 있다.

(글과 그림, 2009년 9월)


풀을 뽑으면, 그 흙이 묻어있다고만 생각했다. 묻어있다는 것은 수동의 의미다. 풀이 원한 것이 아니라, 풀이 거기에 있기에 단지 그것이 묻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 시가 그런 나의 생각을 전환시켰다. 갑자기 머리 뒷 쪽이 당기는 것 같았다. 움켜쥔다는 것은 능동성이다. 풀이 그것을 쥐고 있다는 것은 풀의 생명을 보는 시인만의 생태적 감수성이 남다르다는 것일 테다. 그림책 화가인 김환영님의 시에서는 그런 힘이 느껴진다. 생명의 능동성. 그것은 단지 시인이 자연을 감상하는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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