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 : 어떤 핀끝

" 용산 "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11/13 달팽이집 - 김환영 (2)

달팽이집 - 김환영



달팽이 집
김환영

달팽이는 날 때부터
집 한 채씩 지고 있으니

월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전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몸 집이 커지면
집 평수도 절로 커지니

이사 갈 일 없어 좋겠습니다!
사고 팔 일 없어 좋겠습니다!

뼛속까지 얼어드는
엄동설한에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
불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지난 여름,  용산 현장 그림책 작가 전시회에 걸렸던 김환영님의 시와 판화다.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 "불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땅을 팔라던 백인들 앞에서 "어떻게 공기와 땅을 사고 팔 수 있겠냐"는 어느 인디언 추장의 서글픈 연설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너무 낯설만큼 우리는 모두 근대의 메커니즘 안에 들어와 있다. 집을 소유하고 나서야, 태어난 이후 주욱...30년 넘게 해왔던 월세살이 전세살이 걱정하지 않게 되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욕조' 있는 집에 산다는 것에 남편과 부둥켜 안고 얼씨구나 좋아했다. 우리들의 이런 순진한 마음도, 근대의 메커니즘 안에 집을 사고 파는 행위로만 해결 가능한 일이니...몸둘 바를 모르겠다.

또한, 이 시를 읽고 나서 곧장 떠오른 것은 어릴적 상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세들어 사는 주제에"라며 나에게 마구 물총을 싸댔던 주인집 남자아이가 떠오른다. 그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서, 일하고 돌아온 엄마를 붙잡고 "XX가 나보고 세들어 사는 주제래.."하며 으앙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그 서글픔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다 타버린 건물 앞에서 6년 형을 선고 받고, 3000쪽이 넘는 수사기록이 공개되지 않는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지 모르겠다. "세들어 사는 주제.."라며 물총을 싸듯, "세들어 사는 주제에..." 뭐 그리 할 말이 많냐고 공권력이 이들에게 총탄을 날리고 있다.

그래도, 이 시는 서글픔 속에만 머물게 만들지 않는다. 달팽이를 보고,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공기'와 같은 그의 집을 보고 부러움을 느끼는 내용이지만, "....좋겠습니다"로 반복되는 후렴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선언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두 손 발짝 올려 만세, 만세, 를 외치듯.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다! 라고 손을 번쩍 들어 자기 존재를 드러내듯 보이기 때문이다.
top